한식에서 전주가 갖는 위상은 대단하다. 전주 땅에서 기원한 음식과 문화가 워낙 많다. 한식 세계화 최전선에 선 전주비빔밥은 기내식으로도, 편의점 삼각김밥으로도 인기 메뉴다. 숙취가 심한 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 역시 전주식 콩나물국밥이다. 푸짐한 상차림으로 승부하는 막걸리 골목, 선지를 꾹꾹 눌러 담은 남부시장의 피순대도 전주의 자랑거리다.
전주는 역시 비빔밥이다. 전주비빔밥은 세계로 뻗어 나간 원조 ‘K 푸드’다. 그때 그 시절, 월드 스타에게 “두 유 노 김치?”라 물으면 으레 “비빔밥을 먹어 봤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내한한 마이클 잭슨이 전주비빔밥에 매료돼 재료 구입처와 조리법까지 알아 갔다는 일화는 워낙 유명하다.
경남 진주에도 비빔밥이 있다. 육회를 중심으로 고사리‧무나물‧숙주나물 등 일곱 가지 재료만 올리는 진주비빔밥과 달리 전주비빔밥에는 대략 15가지 이상의 재료가 올라간다. 양이 푸짐하고 모양새도 화려하다. 차림이 옹색하면 전주비빔밥이 아니다. 숟가락 대신 젓가락을 써야 겨우 비빌 수 있다.
전주비빔밥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갑기회관’ 김정옥(64) 사장은 “밥·육회·고추장이 맛을 좌우하는 핵심”이라고 했다. 일단 한우의 사골 국물로 밥을 짓는다. 그래야 밥알이 서로 달라붙지 않고 고슬고슬하니 고소한 맛을 낸단다. 육회는 한우의 엉덩이 살만 고집한다. 고추장에는 오디·매실·사과 등 갖은 과일을 넣어 감칠맛을 돋운다.
놋그릇에 오방색 화려한 꽃이 피었다. 샛노란 황포묵을 비롯해 콩나물·대추·밤·은행·잣·표고버섯·당근 등 15가지 재료를 넣은 전주비빔밥(1만5000원)이 상 위에 차려졌다. 맛과 향, 빛깔 모든 게 넉넉했다.
긴 세월 우리는 콩나물국밥으로 속을 달랬다. 콩나물국밥은 값싸고 든든한 한 끼 식사이자, 숙취 해소용으로도 효험이 막강한 음식이다.
전주 사람 누구나 국밥엔 일가견이 있다. 콩나물국밥의 고향이 이곳 전주니 당연한 일이다. 원조를 따지진 않지만, 취향은 확연히 갈린다. 69년 내력의 ‘삼백집’은 뚝배기에 밥을 미리 넣고 끓이다 계란을 얹어 낸다. 국물이 걸쭉하고 고소한 맛이 강하다. 끓여놓은 육수를 밥에 수차례 토렴해 상에 올리는 ‘현대옥’ ‘삼번집’ ‘왱이콩나물국밥(왱이집)’ 스타일도 있다. 펄펄 끓이지 않아 술술 넘어가고, 텁텁함 없이 개운하다. 이른바 ‘남부시장식’이다. 24시간이 모자라는 시장통에서는 빨리 비울 수 있는 국밥이 통했을 터다.
‘왱이집’의 문을 두드렸다. “손님이 주무시는 시간에도 육수는 끓고 있습니다”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유대성(60) 사장이 육수를 내기 위해 북어·밴댕이·다시마·표고버섯·대파 등을 가마솥에 붓고 있었다.
국밥과 섞박지 그리고 수란. 콩나물국밥(7000원)의 상차림이다. 일단 수란에 국물을 적당히 붓고, 김을 잘게 부수어 얹은 다음 후루룩 마셨다.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확 퍼졌다. 뜨끈하게 데운 모주(2000원)까지 한입에 털고 나니 식욕에 확 돌았다. 오징어와 묵은김치를 넣어 끓인 콩나물국밥은 얼큰하고도 시원했다. 지금도 침이 고인다.
통영에 ‘다찌’, 마산에 ‘통술집’이 있다면, 전주에는 막걸리 골목이 있다. 막걸리를 주문할 때마다 대여섯 가지 안주가 덤으로 깔리는 방식. 그들만의 넉넉한 술 문화다. 전주 삼천동·서신동·경원동이 이름난 막걸리 촌이다. 한때 삼천동 막걸리 골목 안에 마흔 곳이 넘는 막걸리 집이 있었다. 지금도 스무 곳이 줄지어 서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 무렵이 막걸리 골목의 최대 호황기였다. 나라가 어려워지자, 막걸릿집으로 사람이 모였다. “술만 시키면 됐기에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직장인과 대학생이 많았다. 그땐 막걸리 세 병 들어가는 주전자 한 통이 1만원에 불과했다”고 서신동 ‘옛촌막걸리’ 최인덕(61) 사장이 회상했다. 3만~4만원만 모여도 여럿이, 배불리, 거나하게 취할 수 있던 시절이다.
예전엔 술 단위로 주문을 받았지만, 최근엔 주점 대부분이 ‘커플상’ ‘가족상’ 따위의 세트로 술상을 차린다. 술은 약해도 안주는 푸짐하게 먹고 싶은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생긴 변화다. 불평하는 손님도 있지만, 가게를 탓할 일도 아니다. 술집에 주당보다 미식가가 많은 시대다. 술 문화는 그렇게 달라져 간다.
‘옛촌막걸리’의 가족상(5만3000원)은 12개 안주가 기본이다. 김치찜·들깨삼계탕·족발·간장게장·대하·홍합탕…, 테이블 두 개를 붙이고서야 겨우 모든 안주를 올릴 수 있었다. 막걸리 집도 이제는 인심이 아니라 음식이 경쟁력이었다.
이성계가 왜구를 무찌른 뒤 승전고를 울렸다는 언덕 오목대. 이곳에서 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풍남동 일대 700여 채 한옥 지붕이 고요히 파도를 이룬다.
한옥마을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달리 오랜 전통의 먹거리를 찾기 쉽지 않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상점이 워낙 많고, 유행도 빠르게 바뀐다. 전주 사람은 한옥마을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거의 없다. 서울 사람이 명동 가기를 꺼리는 것과 비슷한 심리다.
그나마 현지인이 즐겨 찾는 집이 성심여고 앞 44년 내력의 분식집 ‘베테랑’이다. 면 성애자도 인정하는 전국구 칼국수 맛집이다. 달걀 푼 걸쭉한 육수와 푹 삶은 면발 위로 고춧가루와 들깨, 김 가루를 듬뿍 뿌려 낸다. 칼칼하고도 구수한 국물 맛의 중독성이 대단하다. 요즘처럼 추운 날 더 생각나는 맛이다.
한옥마을 건너편 남부시장에서 오랜 세월 사랑받는 먹거리는 피순대다. 선지가 들어있어 붙은 이름. ‘조점례 남문 피순대’가 가장 이름난 순댓집이다. 시장에서 거의 반세기를 버텼다. 가게는 오전 7시에 열지만, 2대 사장 권교숙(55)씨와 직원들은 5시부터 나와 채비를 한다. 돼지내장을 삶아 순대국밥(7000원)에 쓸 육수를 끓이고, 피순대(1만2000원)를 손수 만들고 쪄낸다. 선지를 꺼리는 편이나, 이상하게도 이집 피순대는 잘도 받아먹었다. 그만큼 선지와 찹쌀, 채소의 조화가 절묘했다. 내장이 듬뿍 들어간 순대국밥 역시 마찬가지였다. 속이 꽉 찬 것이 쫄깃하고도 담백했다.
전주식 수제 초코파이의 유행을 이끈 집이 경원동의 ‘PNB풍년제과’다. 51년 문을 열어 3대째 이어온다. 강현희(73) 2대 사장은 요즘도 손수 초코파이(1개 1900원)를 만든다. 빵을 굽는 건 기계가 하지만, 버터크림을 펴 발라 잼을 얹고, 겉에 초콜릿을 묻히는 작업은 여전히 그의 손을 거친다. “모양은 삐뚤빼뚤해도, 그래야 추억의 맛이 살아난다”고 말한다.
수제 초코파이가 뜬 건 2000년대 이후. 사실 빵집의 오랜 스테디셀러는 이른바 ‘센베(전병)’ 과자다. 일흔을 훌쩍 넘긴 전병 기술자가 빵 공장 한편에서 30년 넘게 전병을 구워오고 있다. 완주산 봉동 생강으로 맛을 낸 ‘생강 센베(8000원)’를 찾는 어르신이 많다.
객사 주변 일명 ‘객리단길’ 일대엔 젊은 디저트와 베이커리가 많다. 이를테면 웨딩 거리의 ‘평화와평화’는 휘낭시에로 유명하다. 바삭한 식감에 달콤 짭짤한 소금휘낭시에(2700원)가 인기 메뉴다. 베이커리 카페 ‘나잇나잇’은 펌킨 파이(6500원). 카페 ‘노트릭’은 파운드 케익(6000원)으로 소문이 났다.
[출처: 중앙일보]
국가대표 한식
경남 진주에도 비빔밥이 있다. 육회를 중심으로 고사리‧무나물‧숙주나물 등 일곱 가지 재료만 올리는 진주비빔밥과 달리 전주비빔밥에는 대략 15가지 이상의 재료가 올라간다. 양이 푸짐하고 모양새도 화려하다. 차림이 옹색하면 전주비빔밥이 아니다. 숟가락 대신 젓가락을 써야 겨우 비빌 수 있다.
전주비빔밥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갑기회관’ 김정옥(64) 사장은 “밥·육회·고추장이 맛을 좌우하는 핵심”이라고 했다. 일단 한우의 사골 국물로 밥을 짓는다. 그래야 밥알이 서로 달라붙지 않고 고슬고슬하니 고소한 맛을 낸단다. 육회는 한우의 엉덩이 살만 고집한다. 고추장에는 오디·매실·사과 등 갖은 과일을 넣어 감칠맛을 돋운다.
놋그릇에 오방색 화려한 꽃이 피었다. 샛노란 황포묵을 비롯해 콩나물·대추·밤·은행·잣·표고버섯·당근 등 15가지 재료를 넣은 전주비빔밥(1만5000원)이 상 위에 차려졌다. 맛과 향, 빛깔 모든 게 넉넉했다.
걸쭉하게, 개운하게
전주 사람 누구나 국밥엔 일가견이 있다. 콩나물국밥의 고향이 이곳 전주니 당연한 일이다. 원조를 따지진 않지만, 취향은 확연히 갈린다. 69년 내력의 ‘삼백집’은 뚝배기에 밥을 미리 넣고 끓이다 계란을 얹어 낸다. 국물이 걸쭉하고 고소한 맛이 강하다. 끓여놓은 육수를 밥에 수차례 토렴해 상에 올리는 ‘현대옥’ ‘삼번집’ ‘왱이콩나물국밥(왱이집)’ 스타일도 있다. 펄펄 끓이지 않아 술술 넘어가고, 텁텁함 없이 개운하다. 이른바 ‘남부시장식’이다. 24시간이 모자라는 시장통에서는 빨리 비울 수 있는 국밥이 통했을 터다.
국밥과 섞박지 그리고 수란. 콩나물국밥(7000원)의 상차림이다. 일단 수란에 국물을 적당히 붓고, 김을 잘게 부수어 얹은 다음 후루룩 마셨다.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확 퍼졌다. 뜨끈하게 데운 모주(2000원)까지 한입에 털고 나니 식욕에 확 돌았다. 오징어와 묵은김치를 넣어 끓인 콩나물국밥은 얼큰하고도 시원했다. 지금도 침이 고인다.
넉넉히 취하고 싶을 때
IMF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 무렵이 막걸리 골목의 최대 호황기였다. 나라가 어려워지자, 막걸릿집으로 사람이 모였다. “술만 시키면 됐기에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직장인과 대학생이 많았다. 그땐 막걸리 세 병 들어가는 주전자 한 통이 1만원에 불과했다”고 서신동 ‘옛촌막걸리’ 최인덕(61) 사장이 회상했다. 3만~4만원만 모여도 여럿이, 배불리, 거나하게 취할 수 있던 시절이다.
‘옛촌막걸리’의 가족상(5만3000원)은 12개 안주가 기본이다. 김치찜·들깨삼계탕·족발·간장게장·대하·홍합탕…, 테이블 두 개를 붙이고서야 겨우 모든 안주를 올릴 수 있었다. 막걸리 집도 이제는 인심이 아니라 음식이 경쟁력이었다.
옛 맛이 사라진 한옥마을?
한옥마을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달리 오랜 전통의 먹거리를 찾기 쉽지 않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상점이 워낙 많고, 유행도 빠르게 바뀐다. 전주 사람은 한옥마을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거의 없다. 서울 사람이 명동 가기를 꺼리는 것과 비슷한 심리다.
한옥마을 건너편 남부시장에서 오랜 세월 사랑받는 먹거리는 피순대다. 선지가 들어있어 붙은 이름. ‘조점례 남문 피순대’가 가장 이름난 순댓집이다. 시장에서 거의 반세기를 버텼다. 가게는 오전 7시에 열지만, 2대 사장 권교숙(55)씨와 직원들은 5시부터 나와 채비를 한다. 돼지내장을 삶아 순대국밥(7000원)에 쓸 육수를 끓이고, 피순대(1만2000원)를 손수 만들고 쪄낸다. 선지를 꺼리는 편이나, 이상하게도 이집 피순대는 잘도 받아먹었다. 그만큼 선지와 찹쌀, 채소의 조화가 절묘했다. 내장이 듬뿍 들어간 순대국밥 역시 마찬가지였다. 속이 꽉 찬 것이 쫄깃하고도 담백했다.
달콤한 추억
전주식 수제 초코파이의 유행을 이끈 집이 경원동의 ‘PNB풍년제과’다. 51년 문을 열어 3대째 이어온다. 강현희(73) 2대 사장은 요즘도 손수 초코파이(1개 1900원)를 만든다. 빵을 굽는 건 기계가 하지만, 버터크림을 펴 발라 잼을 얹고, 겉에 초콜릿을 묻히는 작업은 여전히 그의 손을 거친다. “모양은 삐뚤빼뚤해도, 그래야 추억의 맛이 살아난다”고 말한다.
수제 초코파이가 뜬 건 2000년대 이후. 사실 빵집의 오랜 스테디셀러는 이른바 ‘센베(전병)’ 과자다. 일흔을 훌쩍 넘긴 전병 기술자가 빵 공장 한편에서 30년 넘게 전병을 구워오고 있다. 완주산 봉동 생강으로 맛을 낸 ‘생강 센베(8000원)’를 찾는 어르신이 많다.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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