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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헛제삿밥

제사는 우리 민족의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전통 의례다.

직계 4대 조상을 모시는 기제(忌祭), 명절이나 절기에 드리는 차례(茶禮), 직계 조상의 산소를 찾아 드리는 시제(時祭), 각 서원의 제향….

유교 예법에 따른 제사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던 조선시대 이후 우리는 이같은 제례를 통해 조상을 섬기고 가문의 일원으로서 정체성을 확인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제례가 끝나면 참석했던 사람들은 제상에 올랐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복을 빌고 정을 다졌다. 좋은 재료만 구해 정성을 다해 조상 앞에 올린 것이니 음식 맛이야 말해 무얼 할까.

어린 시절, 이같은 제사 음식이 먹고 싶어서 제사가 돌아오기만 손꼽아 기다리던 기억이 누구나 있을 듯 하다. 그래서 제사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해보지만 제사가 1년 내내 있는 것이 아니니 아쉽지만 어쩌랴.

“제사가 없을 때도 제사 음식을 먹을 수는 없을까?”

이같은 아쉬움 때문에 생겨난 것이 바로 헛제삿밥이다. 제사가 없는 날에도 제사 음식처럼 차려 먹는다는 뜻이다. 늦은 제사를 올리고 나서 음복을 겸해 허기를 달래려고 상에 올랐던 각종 나물 등을 비벼 먹었을 때의 그 맛을 잊지 못한 사람들이 만들었음직하다. 말 그대로 ‘염불보다 잿밥’ 때문에 탄생한 음식인 셈이다.

#헛제삿밥의 유래

헛제삿밥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등 유명 서원이 많은 안동지역의 유생들이 쌀이 귀한 시절 제사음식을 차려놓고 축과 제문을 지어 풍류를 즐기며 허투루 제사를 지낸 뒤 제사 음식을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보편적이다. 또 한편으로는 제사를 지낼 수 없는 상민들이 쌀밥이 먹고 싶어 그냥 제사 음식을 만들어 먹은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지금에 와서 확실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장원급제를 꿈꾸며 글을 읽던 유생들이 음식을 차려놓고 향을 피워 헛제사를 지낸 뒤 ‘젯밥’을 먹으며 글공부의 신고(辛苦)를 달랬을 장면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유교문화의 본 고장으로 의례중 제사를 숭상해온 안동지역이고 보면 헛제삿밥이야말로 이 지역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헛제삿밥이 상품화돼 식당 메뉴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78년부터다. 당시 안동시가 안동댐 건설로 수몰 직전의 고가옥을 현재 야외박물관 자리로 옮긴뒤 전통음식점으로 활용토록 하자 이곳에 입주한 조계행 할머니(76)가 ‘안동 칼국시’와 함께 처음 메뉴에 넣어 팔았다.

1년 뒤에는 헛제삿밥만 전문으로 하는 또 다른 음식점이 들어섰고, 90년대 들어 하회마을 입구와 임하면 등 안동과 대구에 안동헛제삿밥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줄줄이 들어섰다. 이후 헛제삿밥은 안동의 전통음식으로 널리 인식되게 됐다.

#제사에 올라가는 음식

안동은 태백산 끝자락, 낙동강과 반변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해 ‘배산임수의 길지’로 불리고 있으나 비교적 산악이 많고 평야가 적어 농업 조건은 열악한 편이다. 이 때문에 콩을 위주로 한 밭농사가 주로 발달했으며 바다와 떨어져 있어 교통이 발달되기 전까지 어류는 자반어물 형태로 반입됐으며 생선이 귀했다.

이같은 지리·사회적 환경 등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이 지역 음식은 채식이 많고 양념이 맵고 짜다. 음식이 투박한 편이지만 칼칼하고 감칠 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제사 음식은 고추장과 마늘 등 양념이 들어가지 않아 구수하고 담백하다.

헛제삿밥은 음복상의 모습 그대로다.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제사에 사용되는 3색 나물(고사리 도라지 무채 시금치 콩나물 가지 토란 등) 한 대접과 각종 전(煎)과 적(炙)이 한데 담겨져 나온다. 산적에 간고등어와 상어가 들어가는 것이 특이하다. 또 탕(湯)과 깨소금 간장 종지, 그리고 밥 한 그릇이 나온다. 탕은 어탕(어물로 끓인 것), 육탕(쇠고기로 끓인 것), 채탕(채소 위주로 끓인 것)의 삼탕이 모두 같이 섞여진 막탕(쇠고기, 상어, 명태, 오징어, 무, 다시마 등을 넣어 끓인 것)이다. 탕은 오래 끓여 맛이 담백하고 깊어 제사음식의 고유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헛제삿밥을 먹을 때는 나물에 고추장을 넣지 않고 깨소금 간장으로 간을 해 비벼 먹는다. 제삿밥이니까 당연히 그래야 제 맛이 나지만 최근 일부 음식점에서는 손님의 기호에 따라 고추장을 내놓기도 한다.

#빠뜨릴 수 없는 디저트, 안동식혜

지금도 안동과 의성 등 안동권에서만 먹는 음식이 있다. 바로 안동식혜다. 식혜라 하면 흔히들 단맛의 음청류를 생각하겠지만 안동식혜는 무와 고춧가루물이 들어가는 독특한 음청류로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시큼하고 매운 맛과 함께 입 끝에 단 맛이 남는데 이 지역의 음식 특성을 잘 보여준다.

불그레한 국물에 자잘한 무가 송송 떠있는 안동식혜. 출향인들이 겨울철이면 살얼음이 살짝 낀 식혜를 떠먹던 맛을 잊지 못해 ‘병이 날 정도’로 이곳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맛’으로 인이 박였다.

감주계 식혜(단맛의 국물이 많은 것)와 달리 끓이지 않으며 밥과 얄팍하게 썬 무와 엿기름, 우린 물과 생강, 고춧가루를 넣고 삭혀 만든다. 고춧가루와 생강의 매콤한 맛과 무가 어우러져 담백한 헛제삿밥의 디저트로 제격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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