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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일본인이 본 조선시대 '비빔밥'은 어땠을까?

우리 음식 중에서도 꽃에 비유되는 음식이 있다. 바로 비빔밥이다. 비빔밥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 음식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아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다. 비빔밥은 밥을 보다 간편하고 맛있게 먹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온갖 꽃이 불타오르듯이 찬란하게 핀다’고 하여 백화요란(百花燎亂), 화반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우리 음식이다. 그뿐인가, 밥을 섞으면서 기대감을 주는 특별한 음식이다.

<시의전서> 부븸밥
1890년대에 쓰였고, 1910년에 세상에 알려진 한글 필사본 <시의전서>에는 비빔밥이라는 음식이 처음으로 이렇게 기록되었다. 여기에는 비빔밥이 ‘ (汨董飯)’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간납(전유어)은 부쳐 썬다. 각색 남새(채소)를 볶아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셔 놓는다. 밥에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기름을 많이 넣고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잡탕거리처럼 계란을 부쳐서 골패짝만큼씩 썰어 얹는다. 완자는 고기를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국으로 해서 쓴다.”

<조선요리제법>
1921년 방신영(1890~1977)의 <조선요리제법>에는 비빔밥을 ‘부븸밥’이라고 적어 놓았는데, 오늘날과는 달리 당시에는 비빔밥에 고춧가루를 뿌려 넣었다.
“먼저 밥을 되직하게 지어 큼직한 그릇에 퍼놓고 무나물·콩나물·숙주나물·도라지나물·미나리나물·고사리나물들을 만들어서 먼저 무나물과 콩나물을 속에 넣고 그 위에 밥을 쏟아 넣은 후 불을 조금씩 때어 덥게 하고 누르미와 산적과 전유어를 잘게 썰어 넣고 또 각색 나물들을 다 넣은 후 기름·깨소금을 치고 젓가락으로 슬슬 저어 비벼서 각각 주발에 퍼 담은 후에 누르미·산적·전유어를 잘게 썰어 가장자리로 돌려 얹고, 또 그 위에 튀각을 부스러 트리고 팽란을 잘게 썰어 얹은 후 알고명을 잘게 쓸어 얹고 고춧가루와 깨소금을 뿌려 놓느니라.”

<조선요리> 비빔밥
1940년대 일본어로 출판된 이하라 게이의 <조선요리>에는 비빔밥 조리법이 나온다. 이하라 게이는 조선인 손정규로, 일제강점기에 생활개선운 동에서 식생활을 담당하여 계몽적인 글을 다수 발표했다. 1948년 그가 같은 내용을 한국어로 다시 펴낸 <우리음식>이란 책에 실린 비빔밥 조리법이다.
“쇠고기를 이기고 이상의 조미료에서 고춧가루만 빼고 다른 것은 모두 조금씩 넣어서 볶아둔다. 다른 채소는 각각 데쳐서 물기를 뺀 후 조미료를 섞어서 무쳐둔다. 고사리만은 데친 것을 조미료를 함께 한번 볶는 것이 좋다. 오이는 얇게 잘라 소금에 절였다가 짜서 기름에 살짝 볶으면 좋다. 밥은 좀 고슬고슬하게 짓는 것이 좋으며, 아무쪼록 밥알이 뭉그러지지 않게 살살 피어가며, 이상의 여러 가지 고명을 얹는다. 고춧가루는 입에 넣으며 맛을 보아서 싱거우면 다른 고명을 더 넣는다. 다시마 튀긴 것을 넣으면 더 좋으나 일부러 만들 것은 없고, 튀긴 것이 있으면 넣어도 좋다. 그릇에 담을 때는 위에다 고기와 채소를 보기 좋게 늘어놓는 것도 좋고, 계란을 얇게 부쳐서 가늘게 썰어놓는 것도 좋다. 그러나 보통 집 안에서 해 먹을 때는, 위에 놓는 고명이 없어도 속에 충분히 섞여 있으니까 괜찮다.”-<음식인문학>(주영하 저, 휴머니스트)에서 발췌

밥+반찬+양념장의 조화

비빔밥이 뭐 별거라고? 밥에 나물, 고기, 고명 등을 넣어 참기름과 양념으로 비빈 밥이지. 그렇다. 비빔밥은 여러 가지 재료를 한데 섞어 비빈 밥이다. 어떤 재료와 밥을 넣어 비빈다는 원칙 같은 것은 무의미할 만큼, 갖가지 산채나물을 넣어 비비면 산채비빔밥, 열무김치를 넣으면 열무비빔밥, 멍게를 넣으면 멍게비빔밥, 낙지볶음을 넣으면 낚지비빔밥이다. 그러나 이 섞음이 비빔밥의 미덕이 아닐까? 재료를 많이 넣고 마구 비벼 먹을 때 제맛이 나는 음식이므로. 종류도 무궁무진하고, 누구라도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굳이 사 먹지 않아도 되는 비빔밥. 그런데도 여전히 비빔밥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으며 뉴욕의 소셜 이츠(Social Eats)라는 레스토랑에서는 비빔밥 버거를 만들어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이 버거에는 밥이 없지만 말이다).

비빔밥의 전통성을 떠나 그 종류만큼이나 유래에 대한 각종 ‘설’이 늘 분분하다. 예부터 산신제나 동제·시제 등을 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지냈는데, 제에 참석한 이들 전원이 빠짐없이 음복(飮福)을 해야 하는데 그릇을 하나씩 주고 거기에 메·나물·적 등의 제찬을 함께 담아주니 먹을 때는 자연히 섞어져서 비벼서 먹게 되었다는 설이다. 음복은 돌아가신 조상께 올린 음식을 살아있는 후손이 먹기에 바로 신인공식(神人共食)인데, 이와 같이 제사 후 먹는 비빔밥의 풍습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것. 또 한편으로는 농가에서 논밭이나 들에서 일하다가 새참으로 보리밥을 바가지에 담고 푸성귀 이것저것과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서 먹던 들밥을 비빔밥의 뿌리로도 보고 있다. 결국은 제대로 갖추어진 상차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밥과 반찬을 한 그릇에 모아 비비므로 기능적인 측면이 뛰어난 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비빔밥이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기능적인 측면 못지않게 미학적인 측면도 빼놓을 수 없다.

달걀 지단과 색색의 나물, 화려한 붉은색의 육회가 들어간 비빔밥은 나물보리밥이나 꽁보리밥에 비하면 훨씬 미각을 돋운다. 화려하기 때문에 백화요란(百花燎亂), 즉 ‘온갖 꽃이 불타오르듯이 찬란하게 핀다’고 표현한다. 비빔밥을 화반, 즉 ‘꽃밥’이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월간쿠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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