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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람들의 몸 속엔… 붉고도 진한 무언가가 흐른다

대구 육개장, 도시를 맛보다

육개장의 도시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워 본능적으로 매운 맛 끌려
대구서 시작한 육개장 '대구탕'으로 전국에 퍼져

핵심은 고추기름
양지·사태로 육수 내고 대파 듬뿍 넣어 달큰하게
고춧가루로 기름 내 맵고 걸쭉한 국물 만들어

대구 육개장의 변주
밥 말지 않는 따로국밥 사골육수에 선지 추가
선지해장국엔 파·무 대신 우거지 듬뿍

음식에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연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음식을 맛보면서 그 고장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지역 대표 음식의 탄생·발전 과정을 살펴보는 '도시를 맛보다'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식 전문가들이 그 고장의 맛을 들려 드립니다.
붉은 고추기름으로 뒤덮인 대구 ‘국일따로국밥’ 따로국밥. 다량의 고추기름과 대파를 사용하며, 고기를 결대로 찢지 않고 뭉텅뭉텅 썰어 넣는다는 게 대구 육개장과 여기서 파생된 따로국밥의 특징이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붉은 고추기름으로 뒤덮인 대구 ‘국일따로국밥’ 따로국밥. 다량의 고추기름과 대파를 사용하며, 고기를 결대로 찢지 않고 뭉텅뭉텅 썰어 넣는다는 게 대구 육개장과 여기서 파생된 따로국밥의 특징이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대구는 '육개장 전국 1번지'다. 대구 토박이들은 "대구 대표 탕반(湯飯) 음식 따로국밥 놔두고 웬 육개장 이야기냐"며 의아해할 수 있겠다. 사실 따로국밥은 대구식 육개장에서 진화한 음식이다.

우선 육개장 이야기부터. 육개장의 탄생지가 대구라는 근거는 여럿이다. 그중 하나는 일제강점기 발간된 잡지 '별건곤' 1929년 12월1일 자에 실린 '대구의 자랑 대구탕반'이란 기사이다. '대구탕반은 본명이 육개장이다. … 시방은 큰 발전을 하여 본토인 대구에서 서울까지 진출하였다.'

음식사학자 이성우도 '한국요리문화사'에서 '대구식 육개장이 서울로 올라와 대구탕이 되었다. 대구탕은 서울식 육개장처럼 고기를 잘게 찢지 않고 고기 덩어리를 그대로 푹 삶아 끓인다'고 했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대구탕을 대구 향토 명물로 꼽았고, 소설가 김동리는 자신이 대구에서 먹었던 대구탕 추억을 떠올렸다.

개고깃국에서 나온 육개장

육개장은 '개장(狗醬)' 즉 개고깃국에서 비롯됐다. 개장은 육개장보다 역사가 더 오래됐다. 특히 경상도에서는 유달리 개장을 좋아했다. 하지만 개고기는 먹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을 위해 개 대신 소고기로 개장을 끓이면 그게 바로 육개장. 물론 소 대신 닭을 사용하면 '닭개장'이 된다.

육개장은 '대구탕'이라고도 불렀다. '개를 대신한 소고깃국'이란 뜻으로 '대구탕(代狗湯)'이라 불렀단 설과, 대구에서 특히 즐겨 먹었다 해서 '대구탕(大邱湯)'이란 두 가지 설이 있다.
1 대구 ‘옛집육개장’ 주인 김광자씨가 다음 날 손님들에게 낼 육개장 육수를 끓이고 있다. 김씨는 “과거에는 육수 낼 때 기름진 소고기 양지를 주로 썼지만, 요즘은 손님들이 담백한 맛을 선호해 사태를 더 많이 넣는다”고 했다. 2 ‘옛집육개장’ 들어가는 골목. 야트막한 담장과 지붕 등 1950~1960년대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3· 4 ‘국일따로국밥’ 따로국밥(왼쪽)과 ‘옛집육개장’(오른쪽) 육개장. 따로국밥은 사골(소뼈) 국물로, 육개장은 사태(소고기) 국물로 끓인다. 다른 야채 없이 대파와 무만 들어간다는 점은 같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1 대구 ‘옛집육개장’ 주인 김광자씨가 다음 날 손님들에게 낼 육개장 육수를 끓이고 있다. 김씨는 “과거에는 육수 낼 때 기름진 소고기 양지를 주로 썼지만, 요즘은 손님들이 담백한 맛을 선호해 사태를 더 많이 넣는다”고 했다. 2 ‘옛집육개장’ 들어가는 골목. 야트막한 담장과 지붕 등 1950~1960년대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3· 4 ‘국일따로국밥’ 따로국밥(왼쪽)과 ‘옛집육개장’(오른쪽) 육개장. 따로국밥은 사골(소뼈) 국물로, 육개장은 사태(소고기) 국물로 끓인다. 다른 야채 없이 대파와 무만 들어간다는 점은 같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대구 육개장의 특징은 붉고 걸쭉한 고추기름. 여름에는 땀을 뻘뻘 흘리도록 덥고 겨울에는 사람을 동태로 만들 정도로 혹한인 대구는 생리적으로 매운 육개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고추에 들어 있는 캡사이신 성분이 여름에는 땀을 배출해 체온을 낮춰주고, 겨울에는 찬 몸을 덥혀주는 역할을 한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대파를 넣어 달큰한 감칠맛을 내고, 고기를 서울식 육개장처럼 결대로 찢지 않고 네모나게 칼로 썰어 넣는 점도 대구 육개장의 특징으로 꼽힌다.

대구의 육개장집은 조선시대 경상감영 정문격인 영남제일관(옛 대남한의원 네거리) 앞에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구한말에만 해도 대구 육개장은 지금처럼 붉지 않았다. 지금은 없어진 육개장 명가 '청도집'도 고춧가루가 거의 없는 우거지 해장국 스타일이었다. 고춧가루를 디딜방아나 돌확에 빻았기 때문에 지금보다 입자가 굵었고, 제대로 된 고추기름도 못 뺐다. 일제강점기 고급 도정기 도입으로 고운 고춧가루를 만들 수 있었다. 이후 대구 육개장은 갈수록 벌겋고 맵게 진화하게 된다.

대구 육개장의 세 갈래 진화

대구 육개장은 '육개장' '따로국밥' '선지해장국' 등 크게 세 갈래로 발전했다. 전통적인 대구 육개장은 소고기·대파·무가 들어간다. 양지·사태 등 소고기를 참기름에 볶다가 대파와 무, 마늘·고춧가루 양념을 넣고 끓여냈다. 선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과거 대구 양반집에서 끓이던 방식인데 지금도 토박이 가정에서는 이렇게 먹는다.

6·25전쟁이 터지고 타 지역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새로운 육개장이 만들어진다. 양지·사태 등 소고기 대신 소뼈 그러니까 사골 육수에 대파와 무, 마늘·고춧가루 양념장, 선지가 들어간다. 다른 지역의 장터국밥(사골·선지)과 대구 육개장(대파·무)이 섞인 스타일로, 현재 따로국밥이라 불리는 것들이다.

예전엔 육개장을 비롯해 장국밥은 대개 국에 밥을 말아 냈다. 하지만 양반들은 이러한 장국밥을 '짐승이나 먹는 음식'이라며 멀리했고, 국과 밥을 따로 먹었다. 대구 따로국밥의 원조로 꼽히는 '국일따로국밥'도 처음에는 국에 밥을 만 스타일이었다. 식당 주인 서동술·김이순 부부가 단골 양반 손님을 위해 밥과 국을 따로 내기 시작했고, 이것이 유명해지며 따로국밥으로 자리 잡았다.

선지해장국은 소고기 육수를 기본으로 하되 대파와 무 대신 우거지가 주축이 되고 선지가 들어간다.
다진 마늘(오른쪽)과 고추기름(왼쪽)은 대구 소고깃국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대구 소고깃국 명가
국일따로국밥과 함께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육개장 집으로 꼽히는 '옛집육개장'은 사태·무·대파를 기본으로 하는 전통 대구 육개장을 낸다. 양지와 사태로 초탕을 70% 끓이고 상에 낼 때 재탕한다. 놋그릇을 사용해 기품 있다. 마늘을 고명으로 올리고 후추를 뿌린다.

'성암골가마솥국밥'과 '안영감' '온천골'도 가정식 대구 육개장 계열로 분류된다. '참한우소갈비국밥'은 갈비와 갈빗살로 맛을 낸다.

'조선38육개장'은 대구와 서울의 절충형이다. 대구식으로 고기를 뭉텅뭉텅 썰어 넣지 않고 서울식으로 찢어 넣는다. 덕산동 동아쇼핑 지하 '장작불'은 직접 만들어 쓰는 고추기름이 대구·서울 절충식이다. 대구식 육개장은 '비곗덩어리'라고 할 정도로 걸쭉한 고추기름이 잔뜩 떠 있지만, 이 집은 서울식으로 깔끔하다.

선지해장국은 '진골목'과 '대덕식당'이 이름났다. 진골목은 사골 육수에 대파와 토란, 선지, 양지와 사태 등이 주재료. 지역에서 가장 걸쭉한 맛을 자랑한다. 대덕식당은 대파 대신 우거지를 넣는다. 사골 육수와 선지를 사용한다. 서울 '청진옥'과 경기도 '양평해장국'과 동일 계열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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