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라고 하면 흔히 건강이 좋지 못하거나 소화기능이 떨어진 사람, 어린이들이 먹는 음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아침에 밥 대신 죽이나 미음을 먹는 문화가 발달해 있었다. 조선 후기 농촌경제 정책서 (林園十六志)에서는 '매일 아침 죽 한 사발을 먹으면 위장에 좋다. 이것은 음식의 최묘결(最妙訣)이다'라며 죽의 효능을 칭찬했다. 죽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왕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두루 즐기는 음식으로 인기를 누렸다. 이덕무의 문집 청장관전서에는 '서울 시녀(市女)들의 죽 파는 소리가 개 부르는 듯하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가 살던 18세기에는 죽을 파는 장사꾼이 아침마다 골목을 울릴 정도로 흔했다는 얘기다. 임원십육지를 보면 서민들은 채소와 나물, 견과류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죽을 해 먹었다. 무죽, 시금치죽, 냉이죽, 잣죽, 참깨죽, 마죽, 연밥죽 등을 언급하고 있다. 백합이나 매화 등 꽃까지 죽을 쑤는 데 활용했으니 '떨어진 매화 꽃잎을 깨끗이 씻어서 눈 녹은 물에 삶는다. 흰 죽이 익는 것을 기다려 한데 삶는다'고 매죽(梅粥) 만드는 방법까지 소개하고 있다. 매화 꽃잎을 눈 녹은 물에 삶아 먹는다는 조상들의 정취는 지금 사람들로서는 따라가기 힘든 수준이다. 죽은 쌀을 불려 그대로 끓이거나 갈아서 끓이는데, 조선시대에는 끓이는 방법을 세심하고 다양하게 발전시켰다. 에 나오는 죽 조리법을 보자. '흰 죽은 돌솥에 쑤는 것이 가장 맛이 좋으며 그 다음이 무쇠솥이고 놋쇠나 구리로 만든 솥은 못하다. 물은 감천(甘泉)을 쓰는 것이 좋다. 천(泉)이 나쁘면 죽 빛깔이 누렇고 잘 되지 않는다.' 죽의 조리 방법도 다양했다. 쌀을 충분히 고아서 체에 밭친 미음에서부터 쌀을 맷돌에 굵게 갈아서 쑤는 원미(元味), 곡물을 갈아서 얻은 녹말로 쑨 의이(薏苡)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로 분화됐다. 의이는 원래 율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조선시대에 죽의 한 종류로 불리게 됐다. 요리서인 에 보면 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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