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더운 여름날, 퇴계 선생의 생가로 유명한 노송정에서 칠순의 정숙씨를 만났다. 3년 전, 친정 어머니와 종부를 대물림한 자신의 이야기를 여인들의 노래-내방가사로 표현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정숙씨, 일년 내내‘봉제사접빈객’-조상의 제사를 모시고 정성을 다해 손님을 대접해야 하는 것이 종부의 일생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세상만사 마음에 달린 것-.번거로운 게 아니라 이 또한 사람 사는 재미라 여기면, 일도 기쁨이 된다. 오늘도 정숙씨는 노송정 솟을대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반긴다. 이 시대 앞만 보고 사느라 세상살이가 버거운 이들에게, 또 욕심 탓에 만족을 모르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인생 선배의 진솔한 이야기 힘든 만큼 지혜 또한 깊어졌다고 말하는 정숙씨의 농익은 삶의 지혜를 만난다. ▶ 작가를 꿈꾸던 소녀, 600년 종가에 깃들다 우리네 삶의 전통과 가치를 지키는 사람들이 사는 경북 안동의 노송정 종부, 최정숙씨 어릴 적, 문학소녀로 작가를 꿈꾸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공무원으로 열심히 살았다. 종갓집 딸로 태어나 종부인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정숙씨, 하지만 어머니처럼 힘들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딸은 결국 종부의 길을 걷고 있다. 친정아버지의 간곡한 권유에 못 이겨 스물 다섯에 노송정의 맏며느리가 됐고 그렇게 45년이 흘렀다. ▶ 종부, 큰살림을 사는 사람 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정숙씨는 장독대를 정갈하게 닦고 놋그릇을 윤이나게 닦느라 하루 해가 짧다.8년전 대학교수였던 남편이 정년 퇴직하고 노송정으로 들어온 이후 부부의 일상이다. 유월 유두에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국수를 땀흘려가며 만들어 친척들에게 대접하고밤이면 언제 찾아올 지도 모를 손님을 위해 30여 가지가 넘는 전통과자를 준비한다. 일흔의 나이에도 기꺼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은 편하고 쉽게 사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다.노송정을 찾는 이들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종가의 넉넉한 마음을 선물하고 싶어서다. ▶ 노송정 며느리, 시어머니가 되다 모처럼 외출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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